느리게 걷는 사람보다 최대 46% 낮은 심방세동 위험
7000보만 걸어도 심혈관질환 예방… 걷기의 과학적 효과
“운동할 시간이 없어요.” 바쁜 일상 속 누구나 한 번쯤 해본 말이다. 하지만 운동은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연구에서 ‘걷기 속도’가 심장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심장박동 이상인 ‘부정맥’을 예방하는 데에도 걷기의 속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걸어야 하고, 어떤 속도로 걸어야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걷기의 속도와 걸음 수가 부정맥 및 기타 질환 예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살펴본다.
연구 개요: 42만 명 대상, 13년 추적조사로 밝혀낸 결과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질 P. 펠 교수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42만925명의 건강 데이터를 평균 13년간 추적 관찰했다. 연구 참여자들은 걷기 속도에 따라 시속 4.8km 미만인 느린 그룹, 시속 4.8~6.4km의 평균 그룹, 시속 6.4km 이상인 빠른 그룹으로 나뉘었다. 그 결과, 빠르게 걷는 그룹은 느리게 걷는 그룹에 비해 부정맥 위험이 43% 낮았고, 평균 속도 그룹도 35% 낮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심방세동 위험은 빠르게 걷는 그룹에서 46%, 평균 그룹에서 38% 낮게 나타났다.
걷기 속도가 건강에 미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
빠르게 걷는 것은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서 심폐 기능을 자극하고, 대사율을 높이는 중요한 유산소 운동이다. 이 과정에서 체내 염증 반응이 줄어들고, 혈압과 혈당 수치가 안정되며,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자율신경계의 균형도 개선된다. 즉, 빠른 걸음은 심장 기능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이며 부정맥과 같은 심장 질환의 발생 가능성을 낮춘다. 또한 근육과 혈관을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걷기는 전신 순환을 개선하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이 모든 요소가 부정맥 예방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루 걸음 수와 질환 예방의 상관관계
과거에는 하루 1만 보 걷기가 건강 기준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들은 하루 7000~8500보만 걸어도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가 충분하다고 밝혀졌다. 미국 국립암연구소는 40세 이상 남녀 4840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한 결과, 하루 7000보 이상 걸으면 사망률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20~64세는 하루 8000보, 65세 이상은 6000보를 권장하고 있다. 걸음 수가 증가할수록 제2형 당뇨병, 비만, 우울증, 수면무호흡증, 심지어 치매까지 예방되는 것으로 나타나, 단순한 ‘걷기’가 복합적인 건강 보호 효과를 갖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정맥 외에도 다양한 건강 효과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서 전신 건강에 이점을 주는 운동이다. 빠르게 걷는 습관은 심장뿐 아니라 뇌 건강, 정신 건강, 면역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꾸준히 빠르게 걷는 사람들은 체지방이 적고, 인슐린 민감도가 높아 당뇨병 예방에 유리하다. 또한, 걷기를 통해 산소 공급과 뇌혈류가 증가해 인지 능력이 향상되며,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중장년층 이상에서는 뼈와 관절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운동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고 지속 가능성도 높다. 즉, 걷기는 부정맥 예방을 넘어 삶의 질 자체를 향상시키는 ‘움직이는 건강약’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빠르게 걷는 습관은 단순한 생활습관이 아니라 질병 예방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영국의 대규모 연구는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했으며, 빠른 걷기 하나로도 부정맥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다.
특히, 하루 7000보 내외만 걸어도 상당한 건강 효과가 있다는 점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더욱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걷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것, 그리고 ‘적절한 속도’로 걷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발걸음이 건강을 향한 가장 확실한 투자일 수 있다. 오늘부터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의식적으로 걸어보자. 건강은 그렇게, 작고 느린 걸음 속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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